청동기 농경수렵인의 지구별 여행

Black Diamond 블랙다이아몬드

by Ötzi

1957년, 당시 18살이던 이본 취나드 Yvon Chouinard가 해머와 모루를 가지고 맨손으로 피톤 piton(안전 확보를 위해 바위틈에 박는 금속)을 두들겨 만들던 때로 거슬러올라갑니다. 등반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취나드는 손수 만든 장비를 요세미티로 가져가 그의 낡은 웨건 트렁크에 놓고 팔기 시작했다. 당시는 등반장비가 귀했고 유럽제 피톤들의 내구성이 떨어져 취나드가 제작한 강철 피톤은 여러번 사용할 수 있어 인기가 좋았습니다. 1958년 엘캐피탄의 노즈루트를 워렌 하딩이 초등할때 취나드의 크롬몰리 강철피톤은 그의 장비 목록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취나드 이큅먼트 Chouinard Equipment가 캘리포니아 벤츄라에서 이렇게 탄생되었습니다.

취나드가 만든 제품의 특징은 초기에 제작한 취나드 카라비너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다른 카라비너들과는 달리 가볍고 강하고 디자인은 간결했습니다. 이때부터 이러한 특징들, 즉 단순함, 고기능, 내구성, 실용성이 디자인 철학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1962년부터 1964년까지 이본 취나드는 주한미군으로 근무합니다. 15세부터 암벽등반을 한 그는 당시 선우중옥 씨 등과 함께 인수봉에 두 개의 루트를 완성하게 됩니다. 이후 한국의 등반가들은 그의 이름 영문 그대로의 발음을 따 이 루트를 취나드(Chouinard)A, 취나드B로 불리게 됩니다. 이 때 등반장비를 한국의 대장간에서 직접 만들었다고 합니다. 

 

쉬나드는 1960년대, 요세미티 엘캐피탄 곳곳의 바위가 자신이 직접 만든 피톤으로 패인 현실을 깨닫고 절망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피톤을 생산하지 않고 자연에 해를 가하지 않은 장비를 사용하는 ‘클린 클라이밍’으로 전환합니다. 그리고 1972년 취나드 이큅먼트 카달록에 실린 한 기사가 클라이머들의 등반방식을 바꿔 놓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영국의 클라이머들 사이에서 시작되어 "클린 클라이밍(Clean Climbing)"이란 이름으로 통하던 이 개념은 암벽등반시 너트(nut)와같은 '깨끗한' 확보물만을 사용함으로써 암벽에 손상을 주지말고 등반을 하자는 것으로 이후 새로운 등반 문화 및 사조를 낳게 됩니다. 

 
80년대 들어 클라이밍은 소수의 특이한 사람들만이 하던 비주류 스포츠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대중적인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등반인구의 증가는 장비업계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취나드사의 잇단 성공은 매출의 증가를 가져다 주었지만 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고, 결국 취나드 이큅먼트사는 취나드가 처음으로 피톤을 두들겨 만든지 30여년만에 여러 건의 배상 소송으로 회사전체가 침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부득이 파산선고절차를 밟게 되었습니다. 취나드사의 비극은 회사가 결함이 있는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등반장비에 내재되어있는 위험요소와 사용시 주의사항을 알리는 노력이 미흡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1989년 12월 1일, 취나드사의 직원들은 장비업계 최초로 직원들이 주인인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자는 문서에 서명 하였고 블랙다이아몬드사가 탄생하게됩니다. 블랙다이아몬드는 1991년 캘리포니아의 해변을 떠나 산으로 둘러싸인 유타로 옮겨갑니다. 솔트레이크시티는 몇 분 이면 훌륭한 암벽등반, 빙벽등반, 백컨트리스킹을 즐기러 갈 수 있는 아웃도어 액티비티의 천국입니다. 이 곳에서 블랙 다이아몬드는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참고
(1) 블랙다이아몬드 코리아 http://bdkorea.co.kr:8888/mall2/info/member/member_2.jsp?gunb=2 

(2) 명품도 아닌데…25년 된 등산 재킷 490만원에 파는 이유, 중앙선데이 https://news.joins.com/article/23767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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